"국제사회 최빈국으로 도움을 받던 나라가 다른 나라를 돕는 건 대한민국이 유일하지 않나. 빈곤을 극복하고 발전을 이룬 생생한 경험이 있어 우리나라는 최고의 멘토가 될 수 있다."
지구촌에는 200여 개 국가가 존재하지만 '잘 사는' 나라는 소수다. 국제사회에선 국가 간 개발원조를 통해 이웃나라를 돕고 있다. 선진국이 필요한 나라에 보건·교육·의료·농촌 개발을 지원하는 것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지 13년 후인 2009년 개발원조위원회(DAC)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개발원조 업계를 이끌어온 전승훈 한국개발전략연구소(KDS) 이사장을 매일경제가 만났다.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전 이사장은 다음주 개발협력주간에 정부 훈장을 받을 예정이다.
전 이사장은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경제부처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국제개발 사업을 주관하는 코이카(KOICA)에 파견돼 개발도상국을 방문했던 그는 "어릴 때 가난했던 우리나라의 모습 그대로였다"고 회상했다. 인상적이었던 건 한국에 대한 현지 공무원들 인식이었다. "그들은 비슷한 상황에서 발전한 우리를 보며 희망을 얻은 것이다."
그는 개발원조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할 일이 아주 많다고 강조했다. 개발도상국이 한국이 이룬 발전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이사장은 몽골 대사의 요청으로 2007년 몽골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국가 개발계획을 직접 발표했고, 콩고민주공화국의 국가개발 전략 수립을 돕기도 했다. 르완다 대사는 폴 카가메 대통령으로부터 한국 발전의 비결을 알아오라는 임무를 받고 전 이사장을 찾아오기도 했다. 이렇듯 한국의 개발 모델을 배우고 싶은 개발도상국을 위해 전 이사장은 직접 한국의 경제·사회 발전 역사를 정리한 책을 펴내기도 했다. 그는 "국제 원조시장에서 한국에 대한 수요가 많은데 기업이나 전문가의 참여 실적은 순위권 밖"이라고 지적했다.
전 이사장은 개발원조는 '필요할 때'에 '전문가'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예산 검토 등 절차가 길어 통상 사업 2년 전에 수원국으로부터 요청을 받는다"며 "2년 후에 사업에 착수하면 이미 수원국 정부와 담당자가 다 바뀌어 관심도 떨어지고 진행이 더디다"고 말했다.
전 이사장은 민간에서 개발원조 분야 전문성을 높이고자 2001년 한국개발전략연구소를 세웠다. 그는 "가난한 나라의 공무원으로서 국가 발전 과정에 참여했기 때문에 인생 후반기에는 그 경험을 국제사회와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개발원조 컨설팅과 전문가 육성이 지식경제시대의 총아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전 이사장은 "세계 선진국 주력 산업 흐름이 제조업에서 지식 산업으로 가고 있다"며 "기업도 ESG 경영(환경·책임·투명경영)을 위해 앞으로 해외 원조시장 참여가 늘어날 텐데, 그에 맞는 전문 인력을 키우는 것이 비즈니스 기회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 이사장은 식민지배, 전쟁, 가난을 모두 겪은 우리나라가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제일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K팝 가수들의 글로벌 영향력이 엄청나다. 그렇다면 빈곤에서 벗어난 경험이 있는 우리가 어려운 나라를 돕는다면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이겠나. 그것이 한국이 '글로벌 중추국가'가 되는 길"이라고 덧붙였다.